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시대 3대 명주 중 하나인 '죽력고 竹瀝膏'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대나무 죽竹 + 거를 력瀝 + 기름 고膏
'죽력고'는 대나무가 많은 전라도 지방의 전통주로, 조선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 소주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백팔번뇌」, 「금강예찬」등을 쓴 유명한 문인이며 언론인이었던 육당 최남선이 꼽은 조선의 3대 명주(이강주, 감홍로, 죽력고)로 유명합니다.
죽력고에 대한 기록은 「증보산림경제」, 「임원십육지」, 「동국세시기」등에 등장합니다.
또한 조선 영조시절,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에는 "죽력고는 대나무의 명산지인 전라도에서 만든 것이 유명하다. 청죽을 쪼개어 불에 구워서 나오는 진액과 꿀을 소주병에 넣어 중탕하고 생각을 넣는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력고는 소주에다 죽력(푸른 대쪽을 불에 구워서 받은 진액)을 넣고 증류해서 얻는 술로 은은한 푸른빛을 띱니다.
약이 되는 술. 즉, 약주의 일종으로 단순히 '술'보다는 '약'으로 많이 쓰여서 ~~ 주酒라고 하지 않고 고膏자를 붙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은 조선의 가양주를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수천 가지, 수만 가지의 제조법으로 가구마다 전해져 내려오던 가문의 술(대표적으로 '제주'_제사용 술)은 일제 강점기를 기점으로 그 찬란한 문화가 빛을 잃고 잠자게 되었습니다.
최근 전통주의 복원사업이 다양하게 진행됨에 따라 잊혔던 많은 전통주들이 알려지고는 있지만, 과거 어머니로부터 며느리로 이어져 내려오던 수많은 가문의 맛을 이제는 찾을 수 없음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 시절 금주법에도 불구하고 죽력고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죽(대나무)의 약용 효과 때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술로 취급받지 않고, 약으로 취급했다는 것입니다.
대나무는 고대 문헌「신봉 본초경」에도 그 효능이 등장할 만큼 아주 오래전부터 약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문헌에서 대나무는 맛이 쓰고 성질이 차기 때문에 상기를 해소하고, 종양을 낫게 하거나 해열의 효능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는 죽력이 뇌졸중과 심신안정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과거의 한방에서는 아이들이 중풍으로 말을 못 할 때 구급약으로 쓰이거나 피로 해소를 위해 음용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죽력고를 빚을 줄 아는 사람은 전북 정읍의 태인 양조장을 운영하고 계신 '송명섭'명인이 유일합니다.
전북 정읍은 이순신 장군이 현감으로 계시던 곳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대나무가 울창한 이곳에서 묵묵히 전통주를 빚는 송명섭 명인은 전북도 문화재(제6-3호)이자 죽력고로 2012년 농림축산 식품부 대한민국 식품명인(제48호)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몇 년 전 좋은 기회로 송명섭 명인의 태인 양조장을 견학하게 되면서 명인님의 좋은 말씀과, 술 만드는 강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죽력고 한 병을 만드는 데는 꼬박 3달이 걸리는 길고 외로운 과정이었습니다.
술의 시작부터 명인이 직접 재배한 쌀과 밀로 만들어지고, 누룩 역시 직접 재배한 밀로 만들어서 사용합니다. 일체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고, 죽력을 내기 위해 뜨거운 불로 몇 날 며칠을 다룹니다.
심지어 이 술을 만들기 위해 솔방울이 몇 가지 필요한데, 나침반을 챙겨서 동쪽으로만 향한 가지에서 솔방울을 골라서 따오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죽력고는 32도 정도의 높은 도수의 술로, 씁쓸하면서 강인하고 그윽한 향미를 뿜어내는 남성적인 소주가 됩니다.
눈을 감고 음미하면 마치 서양의 위스키를 마시는 기분입니다.
한 번에 마시고 싶지 않고 아껴서 귀중히 마시고 싶은 술입니다.
어떻게 이 일을 계속해 오실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송 명인은 이것은 외종조부로부터 어머니에게로 이어져 내려온 가업이었고, 자신이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 어머니의 심부름부터 여성의 몸으로 고되게 술 만드는 작업을 하시는 것을 옆에서 도왔을 뿐이다. 자연스럽게 그 제조법을 전수받고 주조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담담히 말씀하셨습니다.
"술은 하늘과 자연, 환경이 빚는 것이고 나는 정성과 마음만 보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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